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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 소살집을 펴낸 한승원씨 장남 한동림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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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한승원씨의 장남이자 한강씨의 오빠로 소설가 가족을 이루고 있는 한동림씨(36)가 등단 9년만에 첫 소설집 '유령(문학동네)'을 선보였다. 199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인 '변태시대'로부터 가장 최근작인 '유령'('내일을 여는 작가'·2001년 가을호) 등 모두 8편이 실렸다.
오랜 시간에 걸쳐 차분히 쓰여진 만큼 "태작은 없다"(문학평론가 김형중씨)는 평가를 받은 이번 작품집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기억의 문제.
즉 이 책에 실린 여덟 편 단편들의 사연은 하나같이 먼 과거의 기억더미에서 헤쳐져 다시 끌려온 '유령'들이다. 환상 속에서의 아버지 살해('핏빛 바다'), 헤어진 뒤 돌연 세상을 떠난 애인에 대한 기억('빛바랜 흑백사진 속의 새벽 새'), 선배 산악인의 조난사 ('조난') 등 의식 저편에 꼭꼭 덮어두었던 기억들은 유령처럼 다시 불려나온다. 사라져 버리기에는 너무도 허망하기에, 그 숨은 사연들은 작은 사건들을 계기로 뛰쳐나와 해원(解寃)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것들이 요구하는 것은 승리를 향해 날아오르는 찬란한 해원이 아니다. '빛바랜…'에서 여주인공 은주가 뇌까리듯, 그것은 '초월된 삶을 위하여 어둠 속에서 싸늘하게 식어가는 것'이며 '자학이 아니라 오히려 완벽한 사랑, 새벽을 위한 진실된 영접'이다.
또한 그것은 진형 할머니의 유령처럼 쪽창에서 바람을 받아 너울거리는 거미줄같이 불명확한 것이지만 그래도 기억해 주기를 소리쳐 부르는 어떤 것이기도 하다. 어쩌면 글쓰기 역시 그런 것이 아닐까. 어둠 속에서 싸늘하게 식어 가듯이 불명확하게나마 기억해 줌으로써 한을 풀어 주는 작업, 마치 유령과도 같은 것, 그것이 글쓰기의 한 속성임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소설은 기억에 관한 이야기'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한씨의 작품들은 한결같이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의 고통스럽고 아름다운 추억을 끌어냄으로써 인생이, 문학이 기억의 축적물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그의 소설은 또한 무의미하게 보이는 현재의 일상이 과거의 상동이거나 결과물임을 보여주는 동시에 한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원형질을 발견하려는 노력으로 인해 고전문학의 면모를 띠게 되며, 그런 본질의 탐구는 끝내 죽음에 가 닿는다.
다음은 작가와의 일문일답.
-- 등단한지 9년만에 뒤늦게 첫 소설집을 냈는데..
▲몇년 전에 낼 수도 있었는데 장편을 먼저 내려다가 늦어졌다. 소설을 빨리 쓰지 못하는 것도 원인이다. 단편소설 한 편을 쓰려면 보통 2-3개월은 걸린다. 써놓고 발표하지 않은 것들도 더러 있다. 결벽증이 있어서 일정한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고 여기면 밖에 내놓지 못한다. 수준이 떨어진 작품은 읽는 이의 눈만 피곤하게 한다. 그러잖아도 얼마나 많은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는가.
-- 장편은 마무리했는가? 어떤 내용을 담았는가?
▲올 상반기에는 내놓을 계획이다. 가족사를 담았는데 학원강사로 바쁘게 살다보니 글쓰는 속도가 느리다. 학원에 나가는 시간을 줄여서라도 상반기에는 완성하려 한다. 가족사를 다루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다. 남의 이야기는 객관화하기가 쉬운데 자기 이야기는 거리두기가 어렵다. 아버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 가족이 작가로 활동하는데, 글쓸 때 아버지와 동생을 의식하나?
▲거의 의식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6년전 고향으로 내려가셨고, 여동생은 시집을 간 뒤 1년에 고작 한두 번 만날 뿐이다. 공대를 나와 컴퓨터프로그래머로 활동하던 막내 남동생이 최근 만화작가가 되겠다면서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나왔다. 수염을 꺼칠하게 기르고 나타난 막내를 보니까 우리 집안의 (예술가적) 기질은 어쩔 수 없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 고향이 전남 광양인가? 아버지의 고향은 거기서 가까운 장흥인데..
▲아버지가 광양중학교 교사로 재직할 때 그곳에서 태어났다. 태반이 그곳 뒷동산에 묻혀 있다는데,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태어난 지 두 달만에 광주로 이사했고, 1979년에 서울로 이사왔다.
-- 소설집에 실려있는 평론가 김형중의 해설에 따르면, 작품속에서 아버지의 이미지가 나쁘게 그려졌거나 심지어 부재하는 양상까지 보인다고 했는데...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을 적용해 해설했는데 나도 그 대목을 읽고 깜짝 놀랐다. 나는 기질적으로 아버지와 좀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어릴 때부터 글쓰는 아버지를 봐온 탓에 작가가 됐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소설집을 아버지에게 헌사한다고 밝혀놓았다.
아버지의 부재는 그동안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예전에 동생의 소설을 놓고 어떤 평론가가 "작가는 하반신이 없고 상반신만 보이는 아버지를 회상하고 있다"고 지적했는데 이와 같은 맥락인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소설만 아셨던 분이다. 식사중에 옆사람이 말을 시키면 '응' '응' 하고 대답은 하지만 아무것도 듣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소설속에 빠져 지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선비다. 내가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집안이 매우 어려웠다. 빚에 허덕일 때도 있었는데 가정에 고난이 닥쳤을 때 그것을 헤쳐나간 분은 어머니다. 재벌총수의 전기를 내기 위해 거액을 제시하며 아버지의 이름을 빌려달라는 제안을 받고서 거절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경제적 관념이 없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훌륭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능한 모습으로 기억된다. 그런 것이 소설 속에서 '아버지의 부재'로 나타났다고 본다.
-- 이번에 책을 낸 것에 대한 아버지의 반응은 어땠나?
▲무척 기뻐하셨다. 아버지는 취직했다는 소식보다 문학과 관련된 소식을 더 좋아하신다. 272쪽. 8천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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