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숙/작가
최루탄을 쏘니까 화염병을 던진다. 화염병을 던지니까 최루탄을 쏜다. 이런 소리가 얼마나 피상적 소리인가는 길게 따지잘 것도 없다. 그런데 정부는 놔두고 요새 신문이나 대학 총장들은 이런 피상적 수준에서 오늘의 사태를 보고 있다. 특히 언론은 교수들의 항의농성이 학생들을 선동한다고 매도하고 있다. 어느 신문은 교수들의 농성이 학생들의 불길에 기름을 붓는 촉매구실을 한다고 질타하면서 “더 이상 폭력시위가 계속되지 않기를 역설하는 게 대학을 지키고 사회의 길잡이가 되어야 할 교수들의 본분이고 의무”라고 못박고 “화염병과 최루탄이 교전하는 전투적 시위나 진압방식은 하루빨리 사라져야 한다는 17개 대학 총장들의 호소는 값진 설득력을 지니게 된다”고 찬양했다.
폭력시위만 말리면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는 피상적인 소리들이다. 이런 소리는 전혀 설득력도 없고 오히려 본질을 흐려서 문제의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 뿐이다. 사태의 본질은 이렇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에 민주개혁을 약속하는 대국민 선언을 했고,대통령선거 과정에서는 개혁에 대한 구체적 실천을 여러 가지로 공약했다. 그 선언과 공약은 노 정권 성립의 근거이므로 이행을 촉구하는 것은 국민의 권리이다. 따지고보면 권리니,의무니 하는 정치적 개념 이전에 그것의 이행은 윤리적 차원의 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행을 촉구하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이 정당한 일이다.
학생들이란 어느 시대,어느 나라 학생이건 아름다운 이상을 품고 있는 이상주의자들이고,그 이상의 실현을 위한 정열을 지니고 있다. 이것이 청년학생들의 기본적 속성이다. 그들은 생활이 현실에 뿌리박혀 있지 않으므로 그런 이상은 관념적이고 동시에 낭만적이다. 그러나 관념적이기 때문에 순수하고,낭만적인 까닭에 정열이 흘러넘친다. 우리나라의 학생들은 바로 그 순수한 정열로 민족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강한 소명의식을 느끼고 민족의 정통적 요구를 가장 충실히 그리고 희생적으로 수행해왔다. 1919년 2·8독립선언,광주학생독립운동,4·19혁명,광주민중항쟁,87년 6월항쟁 등.
학생들은 이번에도 그런 소명의식으로 국민을 대신해서 노 정권을 향해 선언과 공약의 이행을 촉구했다. 그러나 노 정권은 이행은커녕 3당야합 이후 이미 합의했던 것까지 뒤집는 등 오히려 6·29선언 이전의 수준으로 후퇴하고 있다. 바로 이런 태도가 학생들의 시위를 불러왔다. 우리는 6·29선언이 나온 경위를 잘 알고 있다. 6·29선언은 논리적 설득으로 얻어낸 것도 아니고,폭력으로 욱대겨서 얻어낸 것도 아니다. 헌법적 차원의 정당한 의사표현 방식인 시위로 강제했었다. 그때 학생들은 얼마나 많은 희생을 당했던가? 이재호·김세진·박종철·이한열…,이런 이름들은 뼈아픈 희생의 대명사이다. 그런 희생 위에서 이루어진 그 선언의 이행을 촉구하고,배신을 규탄하는 학생들의 목소리는 높을 수밖에 없다. 노 정권은 이런 학생들을 또 최루탄으로 쫓고 곤봉으로 두들겨 팼다. 이런 파렴치한 무리와 강압이 화염병을 불러왔다. 언론은 이 화염병과 최루탄의 악순환을 6·29 전과 똑같이 양비론으로 매도했다. 본질을 감춘 이런 양비론은 도둑과의 싸움을 놓고 폭력을 썼으니 양쪽이 똑같다는 소리와 다를 것이 없고,결국 학생들만을 매도하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그렇게라도 학생들을 매도했으면 언론이 앞장서든지 그만한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게 아닌가? 대안이 없으니까 학생들이 마지막 방법으로 스스로 자기 목숨을 끊은 것이다. 학생들을 여기까지 몰아치는 데 언론의 책임이 없다고 강변할 염치는 없을 것이다.
언론은 이번에는 교수들의 농성이 학생들을 부추긴다고 교수들까지 매도하고 나온다. 학생들의 죽음에 항의하여 그 원인인 선언과 공약의 이행을 촉구하는 교수들의 농성을 놓고 기껏 부추기는 쪽의 효과로만 보는 편향적 시각은 피상적 양비론보다 더 저열하다. 지금 항의농성을 하고 있는 대부분의 교수들은 더 멀리는 놔두고 6·29선언을 끌어낼 때만 하더라도 교수직을 걸고 호헌 반대서명을 했던 사람들이며,그때 1천명에 가까운 교수들의 그런 결단이 학생들의 희생을 그만큼이라도 줄이고 6·29를 끌어내는 데 일정한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 이 사실은 누구보다도 지금 그런 논설을 쓰고 있는 언론의 중진들이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교수들은 학생들을 달래야 할 입장이라고 한다. 백번 달래고 싶다. 학생들을 달랠 논리를 달라. 대학의 언어는 논리라는 언어밖에 없다. 대국민 선언과 공약을 이행하라고 촉구하는 학생들을 두들겨 패고 죽이는 판에 그에 항의하지 말라고 학생들을 달랠 논리가 있는가? 언론은 기껏 한다는 소리가 하나밖에 없는 목숨이니 자제하라고 했다. 학생들은 자기 목숨이 여러 갠 줄 알고 하나쯤 던져보는 것이 아니므로 이런 소리는 학생들을 천치로 취급하는 모욕이거나 잠꼬대이다.
어느 총장은 이런 언론에 덩달아 교수들의 농성을 “불난 집에 부채질한다”고 한 수 더 뜨면서 교수들은 “문제를 깊이 생각하고 창의적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할 사람들”이라고 했다. 지금 당면한 사태를 해결하는 데 정부가 선언과 공약을 이행하는 이외에 도대체 무슨 ‘해결책’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더구나 ‘창의적인 해결책’이라니 이런 소리는 하늘에서 맨손으로 별을 따오라면서 그 ‘창의적인 방법’을 생각해보라고 다그치는 소리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언론은 멀리는 놔두고 6·29 이전의 부끄러운 자기 모습을 돌아보며 이제부터라도 문제의 본질에서 논리를 전개하기 바라며,총장들도 학생들의 희생을 진정으로 더 바라지 않는다면 그 높은 사회적 권위로 정권을 향해 ‘선언’과 ‘공약’을 이행하라고 준엄하게 촉구해야 한다. 이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전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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