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송기숙
남북 정상이 뜨겁게 손을 잡았다. 남북공동선언에 서명하고 두 정상이 붙잡은 손에서는 손가락의 근육이 뒤틀릴 지경이었고, 김정일 위원장은 서명장을 나가며 걱정 말고 홀가분하게 주무시라 했다. 그 잠이 어찌 김 대통령 혼자만의 잠이겠는가? 회담이 열린다는 말을 듣고부터 굽이마다 조마조마 옥조였던 온 민족의 가슴이 비로소 내려앉는 순간이었다.
이제는 정말 뭐가 될 것 같기도 하다. 두 정상이 만나는 동안 `뜻밖이고' `놀랍고' `이례적이고' `예상을 뛰어넘는' 일들이 숱하게 벌어졌다. 김정일 위원장은 비행장에까지 나와 영접을 했고, 정상이라는 동등한 권위를 뒤로 하고 '동방예의지국'을 들먹이며 손윗사람 대접이 깍듯했으며, 서울답방을 약속하기도 했다. 그쪽 군인들은 반세기가 넘도록 겨누고 있던 총을 들어 이쪽 대통령에게 적의가 아니라 경의를 표했으며, 연합이니 연방이니 통일로 가는 체제의 밑그림까지 가닥을 잡았다. 무엇보다 김 위원장의 호방하고 여유만만한 표정에는 속마음이 그대로 드러난 것 같아 신뢰가 느껴졌다.
이제는 정말로 뭐가 이루어져야 한다. 50여 년 동안이나 흩어졌던 가족들부터 만나야 하고, 20년 30년 감옥살이를 하고도 이역의 뒷골목을 서성거리고 있는 장기수들도, 납북 어부들도 모두 가족의 품에 안겨야 하고, 휴전선 잡초 속에 녹슬고 있는 철마도 남북의 하늘에 기적을 울리며 달려야 한다.
이제 우리는 화해와 협력의 새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그동안 우리 가슴은 적대와 갈등으로 피멍이 들어있다. 이제 그 모진 세월을 새기며 우리 모두가 성심을 다해야 한다. 통일의 주체가 민족이듯이 남북을 오가며 실질적으로 협력하고 화해를 하는 주체는 양쪽 주민들이고 그 성패는 직접 부딪치는 그들한테 달려 있다. 북한은 지금 경제가 몹시 어려워 그 딱한 모습이 세상에 드러났지만 그것은 경제라는 일면의 사정이고, 그들은 그동안 그들 나름의 가치와 삶에 충실해 왔으며 그 자존심은 대단한 것 같다. 기왕에 서로 체제를 인정하고 화해와 협력을 다짐하고 나선 마당에 행여 어느 한 면만 보고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중국과 교류가 터졌을 때 돈밖에는 내세울 것이 없는 졸부들이 먼저 달려가서 설치고 다녔던 일들은 우리들이 북한 사람들을 대하는 데 교훈이 되어야 할 것이다.
양쪽 당국은 그동안 갖가지 방법으로 증오와 불신을 부채질해 왔다. 당국은 이제 그런 불신을 씻는 데도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특히 학교의 반공교육이 머리에 박힌 세대들은 가치관의 혼란을 느끼고 있다. 이제 숨기고 뒤틀지 말고 사실은 사실대로 가르쳐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서로에 대한 그릇된 인식은 인식대로 머리에 박혀 있는 사람들이 화해니 협력이니 흥야항야하다가 자기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사실에 부딪칠 때 당황할 것은 당연한 일이며, 그것은 서로간에 새로운 불신의 씨가 될 것이다. 과거의 잘잘못은 잘잘못대로 그 세대가 그들의 처지에서 수행했던 역할이었고 그런 일들은 이제 역사의 장으로 넘어갔다. 대결의 시대에는 그 시대의 처지와 태도가 있었고 다가온 화해의 시대에는 또 이 시대의 처지와 태도가 있다. 호칭 하나만 하더라도 그렇다. 그들과 만났을 때 입에 붙은 대로 `김일성이' `김정일이' 했다가는 대번에 눈을 부릅뜰 것이다. 평소에 적어도 공석에서는 `김일성 주석' `김정일 위원장'으로 불러 그런 호칭을 웬만큼 입에 익혀야 할 것이고 그래서 그들도 우리 대통령을 `김대중 대통령'으로 부르게 해야 한다.
모처럼 다가오고 있는 이 귀한 기회를 도공이 자기 다루듯 숨죽이며 맞이하자. 송기숙 소설가.
전남대 교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