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장흥의 바닷가에 터를 잡고 소설을 쓰는 작가 한승원 |
|
|
“또 바다를 소재로 썼느냐, 지겹지도 않으냐 그건 절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벌써 만 6년째 고향인 전남 장흥 바닷가에 터를 잡고 살고 있는 소설가 한승원씨. 매일 바닷가 산책을 거르지 않는다는 그는 이곳에서 사는 재미를 만끽하고 있었다. 바다가 보이는 한옥 앞마당에는 연못을 파서 비단잉어를 풀어놓고 뒷마당에는 닭4마리를 기르면서 집필에 몰두하고 있는 그의 근황을 들어보았다.
전남 장흥으로 내려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었다. 날씨라도 좋았더라면, 간만에 서울을 떠난다는 기대에 발걸음이 가볍기라도 했으련만, 대전을 지나면서부터 죽죽 내리기 시작하던 비는 이내 폭우로 변해 기자의 마음을 심난하게 만들었다. 이왕 바닷가 가는 길인데, 청명한 하늘과 쪽빛 바다를 기대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장흥 터미널에 도착 후 택시부터 잡았다. “율산마을 대밭 밑 작가 선생 집을 아느냐”고 했더니 기사양반,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오케이다. 꼬불꼬불 이어진 길을 한참 달려가 대밭 밑에 자리잡은 아담한 한옥 앞에 차를 세운다. 기사 양반의 경쾌한 클랙슨 소리에 편한 한복을 입은 한승원씨(63)와 후덕한 인상의 이감오 여사(60)가 나와 손짓을 한다.
■ 6년 전 고향 바닷가로 내려 오면서 육신이 모두 건강해져
이여사가 내온 쑥떡과 녹차를 앞에 두고, 거실에 마주 앉았다. 바닷가 쪽으로 크게 낸 창이 인상적인 집은 집주인만큼이나 넉넉하고 여유 있어 보인다. 날씨가 좋을 때는 장흥 앞바다가 눈앞에 확 펼쳐진다는데, 오늘은 시야가 흐리기만 하다.
“여기 내려온 후 몸이 아주 좋아졌어요. 서울에서는 병원 신세도 졌을 정도였는데, 이곳에 내려오니 성인병 징후가 다 사라졌어요. 사람들이 왜 내려갔느냐고 물으면 전 농담삼아 그래요. 오래 살려고 여기 내려왔다고. 사실 그건 육신의 의미만은 아니지요. 작가적 생명을 생각했을 때도 그래요. 오래 살아야 오래도록 쓰지요.”
지난 95년 내려온 이래 그는 한 해에 1권 꼴로 작품을 선보여왔다. <화사> <멍텅구리배> <바닷가학교> 등 장편만 5권이다. 그만큼 밀도 있었던 세월이라고나 할까.
“아주 즐거워요. 글 쓰는 틈틈이 바닷가 산책을 나가죠. 걸어서 30분이면 바다가 나오니까, 갯벌의 생물 보면서 바다공부도 하고…. 저녁엔 마누라와 포도주를 즐겨 마시는데, 이곳은 공기가 좋아 그런지 서울보다 많이 마셔도 안 취해요. 덕분에 술을 아주 잘 마시게 됐지요. 뒤안에 보면 포도주병이 수북하다니까(웃음). 얼마 전에는 마당에 연못을 팠어요. 거기 수련도 심고, 비단잉어도 풀어놓았는데, 보는 재미가 여간 아니예요.”
그는 특히 ‘수련’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표시했다. 수련은 봄부터 여름 내내 꽃을 피우는데, 해가 막 뜨면 피기 시작해서 오전 10시에 만개하고 오후 2시부터는 질 채비를 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 모양새는 여느 꽃과 달리 꽃봉오리가 딱 오무라진 상태로 물 속에 잠긴다는 것이다. “자존심 강한 미녀 같지요”라며 그가 빙그레 웃는다.
얘기를 나누는 중 ‘꼬끼요~’ 닭 우는 소리가 요란하게도 지축을 흔든다. 닭을 키우는 모양이라고 하자 한씨가 웃었다. “닭이 지네를 잡아먹는다고 해서 기르는 겁니다. 이곳이 유독 지네가 많거든요. 원래 바닷가를 면한 습한 곳에 지네가 많은 법이에요. 저와 마누라가 한번씩 세게 물린 후에는 지네 노이로제에 걸려버렸어요. 이젠 전선줄 떨어진 것만 봐도 지네인 줄 알고 깜짝 놀란다니까요.”
그가 이번에 낸 소설 <물보라>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지네라는 놈들은 먹을 것을 제때 주지 않으면 힘센 놈이 여린 놈의 가슴을 끌어안고 이빨을 박아 거기서부터 야금야금 파먹어 버린다던가. 지네를 실제로 관찰하지 않았으면 나오기 힘든 글인 듯싶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나다를까. 지금은 비어 있는 유리병이며 집게를 가리켜 보인다.
<물보라>는 열살 난 섬마을 소년 해선이를 주인공으로 씌어진, 아름답고 철학적인 성장소설이다. 나무보지, 수리부엉이, 물너울, 달랑게와 물새떼가 어우러지는 갯벌…. 섬마을은 만물이 서로 교통하는 신화적 공간이며, 티없이 순진무구한 동심과 자연스레 솟아난 성적 상상력이 서로 안고 뒹구는 공간이다. 작가는 익히 알려진 맛깔스런 글솜씨로 독자들을 이 ‘연도’라는 작은 섬으로 빨려들게 만든다. 새우 양식을 하는 아버지는 술만 취하면 해선이를 매질하다가 나중엔 끌어안고 운다. 그러던 중 종국에 생부가 나타나고 뭍으로 가자는 생부를 뿌리친 해선이는 양부를 택하고, 양부는 그런 해선이를 위해 낡은 집에 신식 화장실을 만들 계획을 세운다.
“일종의 성장소설이면서 또 눈 밝은 독자에게는 ‘아비 찾기’의 모티브를 가진 소설로도 읽히겠지요. 왜 해선이가 두들겨 맞으면서도 양부를 택했는가. 그게 해선이라는 소년의 힘이거든요. 양부가 있는 바다의 세계도 생부가 있는 뭍의 세계도 정작 해선이에게는 답이 아니죠.”
■바다는 내게 ‘학교’이고 ‘종교’
소설을 읽다 보면 비릿한 갯내음이 물씬 풍긴다. 쓸쓸한 모래톱을 할퀴는 바다와 새우와 짱뚱어가 잔망스럽게 돌아다니는 모습도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그만큼 바다생활을 묘사하는 그의 문장은 생생하고 홀릴 것 같은 힘이 있다. 바다에 대한 그의 애정이 그만큼 깊어서일까. 한씨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바다의 작가’다. 그의 작품 대부분이 고향인 바닷가와 어촌 사람들을 배경으로 해온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심지어 그는 “바다를 알면 세상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에게 바다는 ‘학교’이고 ‘종교’이며 곧 ‘우주’인 것이다.
“또 바다냐, 그렇게 쓰고도 지겹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절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내 문학의 발원지는 ‘바다’예요. 바다는 우주의 자궁이며, 생명의 시원이고 근원이지요. 제겐 바다는 무궁무진한 미지의 블랙박스라고 느껴집니다. 품어내고 품어내도 한없는 이야기의 방주죠. 아마 늙어 죽을 때까지 바다를 공부해도 전 영원히 ‘학생’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승원씨는 지난 1968년 <포구>라는 작품으로 대한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34년이라는 기나긴 시간 동안, 그는 굿을 하지 않으면 몸이 아픈 무당처럼, 신들린 듯이 꾸준히 작품을 발표해왔다. <불의 딸>(83) <아제아제 바라아제>(85) <동학제>(94) 등 굵직굵직한 작품으로 한국 문학사에 굵직한 한 획을 그은 그는 지금까지도 <연꽃바다>(96) <멍텅구리배> (2002)등 주목받는 소설을 써내려오고 있다. 그러나 한씨는 문단에서 정답처럼 평가하는 “차돌처럼 응어러진 한(恨)을 토속적 세계에 담아내온 작가”라는 평가에대해서는 썩 마땅치 않아하는 눈치다.
“저 스스로는 토속적인 작가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한’이라고 표현하는데, 제 작품에서 그건 ‘생명력’입니다. 90년대 초반 들어 제 작품엔 큰 변화가 왔다고 생각해요. 그건 휴머니즘에 대한 반성이죠. 인간 본위의 휴머니즘이 생태계의 ‘관계’를 끊어내고, 우주에 해악을 주고 있다는 자각 같은 겁니다. 흔히 요즘 말하는 생태주의라고 하나요? 그것과 비슷합니다. 불교적으로는 연기(緣機)사상, 노자나 장자로 말하면 상생(相生)… 그걸 추구하는 것이지요.”
여기까지 말하던 한씨는 인터뷰마다 되풀이되는 이런 질문들이 싫증이 났는지 창 밖으로 시선을 보내더니 딴청을 피운다. “저 마당에 세워둔 탑을 보았소? 저게 내겐 무덤이에요. 나 죽으면 화장해서 저기 뿌려 달라고 했어요. 유골함 만들지도 말고, 그저 훠이훠이 뿌려 달라고. 그래서 탑 안에도 유골함 대신 등불을 넣어두었지요. 제게 죽음이란 건 그런 겁니다.”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이여사가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말라”며 말을 끊는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싫은 눈치다. 보통 작가의 아내란 작가 자신보다 힘든 위치라고 한다. 마음고생이 하도 커서 그렇다나. 그래서 여사에게 남편 흉 좀 봐달라 넌지시 그랬더니 “그런 게 있나…” 하고는 말없이 웃기만 한다.
“사실 여기 내려오기 싫었어요. 친구들도 자식들도 다 서울에 있는데, 너무 머니까. 그래서 맨 처음에는 차로 한 두어 시간 걸리는 서울 근교에 집을 알아보러 다녔지요. 강화도나 퇴촌 즈음이면 오죽 좋을까. 근데 알고 보니 이 양반은 이미 마음을 정해두고 있었던 거예요. 집 보러 가자고 해도 꿈쩍을 안 했을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이곳은 한씨의 고향 덕도에서 차로 40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뒤에는 산이 있고, 앞으론 바다가 보이도록 트인 경관이 마음에 들었던 그들은 헌 집을 사서 개조한 끝에 입주했다. 소설가 이철우가 추천한 목수가 집을 지었고, ‘해산토굴’이란 간판이 달렸다.
“자녀분들은 자주 옵니까” 하는 질문에 이여사가 손을 젓는다. “너무 머니까 어쩌다 한번씩 오지요. 특히 강이는 아기 낳고 나서 몸이 안 좋아서 고생했어요.”
여기서 강이란 <여수의 사랑> <검은 사슴> 등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는 작품을 써내고 있는 한강씨(33)를 이른다. 한씨는 문단에서 보기 드물게 ‘문인 가족’을 꾸리고 있다. 장녀 한강씨가 94년, 장남 한동림씨가 95년에 소설가로 등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문단에도 문인 가족들은 꽤 있다. 황순원-황동규 부자, 김원일-김원우 형제, 김지원-김채원 자매 등등. 그러나 이렇게 아버지와 아들, 딸이 모두 소설이란 장르에, 그것도 신춘문예 관문을 통해 등단한 경우란 지금까지 없었다. 게다가 사위 홍용희씨는 문학평론가이기도 하다.
■아들, 딸, 사위까지 소설 쓰고 평론 쓰는 ‘다복한’ 문학가족
“사실 두 녀석이 국문과에 간다 했을 때 말리고 싶었어요. 자식 중 한명만 이 길을 가면 족하다 생각했거든요. 앞으로 이 아이들이 겪게 될 고생을 생각하니 안쓰러운 마음이 들고요. 이제는 둘 다 소설가 등단도 했으니 좋은 소설가가 되어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자식들이 이처럼 문학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집안 분위기 탓이 크다. 나고 자라면서 늘 글을 쓰는 아버지를 봐온 아이들이니 말이다. 심지어 한강씨는 소설책을 읽으며 한글을 깨우쳤을 정도. 무엇보다 글 쓰는 남편을 타박하거나 질색하지 않고, 한결같이 존경하며 자랑스러워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 같다는 것이 한씨의 생각이다. “사실 아이들이 출가하기 전에는 힘들었어요. 한지붕 아래 작가가 셋이니, 얼마나 신경 쓰였겠어요(웃음). 보면 동림이와 막내 강인이는 제 체질을 닮아서 건강한데, 강이는 제 아버지를 쏙 뺐어요. 식성부터 생김새, 잔병치레 많은 것, 글 쓰는 스타일까지 닮았지요.”
“자녀분 이름이 인상적”이라는 기자의 말에 이여사는 웃었다.
“에이, 솔직히 애 아빠가 젊은 혈기에 이름을 이상하게 지어놨어요. 한국인(동림은 필명이다), 한강, 한강인(한강의 강과 한국인의 인을 딴 강인)… 장난치는 것 같잖아요. 큰 애는 그래서 필명을 쓰잖아요. 강이도 처음엔 강 현이라는 필명을 쓰더니 이제는 제 이름이 더 좋다고 하더군요.”
한씨는 일주일에 한번 객원교수로 있는 조선대에 출강하는 일 말고는 규칙적으로 생활한다. 보통 아침 5시30분이면 기상해서 아침준비와 가벼운 산책 후에 아침을 먹고 1시간 정도 원고를 쓴다. 점심 먹고 난 후 2시 정도까지는 책을 읽거나 산책을 가거나 사람들 만나고, 저녁 먹은 후에는 다시 독서와 각종 산문, 자료 조사 등을 한 후 자정이 되기 전에 잠자리에 든다. 한씨는 “밤새며 일을 하는 습관은 오래 전에 버렸다. 체력이 안 받쳐주기도 하고, 오래 쓰려면 다른 이들과 같은 생활리듬에서 생활해야 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한다.
“저분은 규칙적인 분이세요. 8시, 12시, 5시, 우린 식사 시간을 어겨본 일이 없어요. 워낙 생선을 좋아해서 매운탕을 제일 좋아하지요. 그래서 아침이면 생선국은 빼놓은 일이 없어요.” 이여사의 부연 설명이다.
또한 한씨는 한복을 즐겨 입기로 소문이 났다. 기자가 만난 날도 하얀 저고리에 연회색 바지가 잘 어울리는 소탈한 차림새였다. 아내 이여사의 친구 중에 한복을 짓는 이가 있어 그 옷들을 즐겨 입어왔다는 게 그의 설명.
“내가 좋아하니까 요즘은 마누라가 배우더라고. 바지도 벌써 여러 벌 지어줬습니다. 생활한복 같은 건 아주 잘 지어요.” 보통 소설 한편을 끝내놓고 나면 쉬게 마련이지만, 그는 쉴새없이 새로운 화두를 붙들고 있다. 하긴 작가들이란 이곳저곳에 글의 씨앗을 뿌려두는 게으른 농부와 같은 존재들이 아니던가. 생각나면 한번씩 ‘어느 만큼 자랐나’ 들춰보며 무르익기를 기다리는 법. 그가 요즘 들추고 있는 것은 초의스님 이야기다. 전남 무안군 삼향면에서 태어나 선·교·시·화·차 등 뛰어난 재주로, 탄압받던 시대에 불교를 일으켜 세운 대흥사 13대 종장. 그의 일대기를 재구성하며, 공부 삼아 ‘범패(스님들이 부르는 노래)’를 열심히 듣고 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글 쓰기는 무엇이냐”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옹골찬 대답.
“작가에게 글 쓰기란 곧 생명 그 자체이지요. 살아 있는 한 글을 쓸 것이고, 글 쓰는 것이야말로 내게는 또한 살아 있는 것이니까요. 악착같이 살아있으므로, 또 악착같이 써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가 이처럼 작가적 삶과 생명을 동일시하는 것은, 그가 앞으로도 오랫동안 우리에겐 영원한 ‘현역’으로 남아 있을 거라는 기대를 품게 만든다. 장흥 바닷가로의 낙향과 그가 게을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바다 공부’ 역시 그 연장 선상에 놓여 있는 것이리라. 바닷가 학교의 커리큘럼에 따라 바다의 시간과 순리를 공부하는 학생이라 자처하며 내놓은 책 <바닷가학교>에는 그의 순연한 결심이 이렇게 씌어 있다.
“(…) 머지않아 나도 그 바다로 흘러갈 터이다, 깜깜한 죽음의 시공. 흘러가 잠길 곳을 앞에 놓고 살면 오만해지지 않는다. 내 삶의 처음으로 처음으로 돌아가 새로이 시작할 수 있다. 나는 작품 한편 한편을 영(제로 zero), 그 비어 있음의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하곤 한다."
■ 글·정지연 기자 (alimi@donga.com)
■ 사진·지재만 기자
여성동아/2002.9.13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