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현장 사진찍던 소방수. ‘수몰’ 소식 듣고 다시 찾은 고향. 백로·왜가리·수달이 놀던 강변, 애환 깃든 주민들 모습. 10년간 찍은 사진 모아 10일까지 서울 법련사서 ‘아 물에 잠길 내고향’전시중. “댐이 생기면 살아있는 모든 것이 고향을 잃죠…”.
널찍한 마당에 나락을 널어놓은 양철지붕 집. 먼산을 바라보는 노인의 주름진 눈가에 비치는 「마른 눈물」. 수몰을 앞두고 고향을 떠나야 할 촌로의 모습. 물에 잠길 자연과 「예비실향민」의 애환이 느껴진다.
서울 종로구 사간동 법련사에서 열리고 있는 수몰마을 사진전 「아 물에 잠길 내 고향」(10일까지). 사진작가 마동욱씨(40)가 담아온 수몰지구 탐진강의 표정이다.
10년째 전남 장흥군 탐진강 고향마을을 찍고있는 마씨. 지금까지 찍은 필름만 8만 컷. 사람과 새, 물고기. 강변에 기대어 살던 「살아있는 것」들을 모두 기록해왔다.
그의 작업은 86년부터 시작됐다. 그렇다고 고향이 「행복했던 추억의 공간」이어서는 아니다. 집안은 가난했다.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농사를 거들다가 15세 때 상경했다. 구로공단 일대를 돌다가 검정고시로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교도관으로 첫발을 내딛었다가 86년부터 소방수로 일했다. 화재현장을 보존하기 위해 배운 사진. 백로와 왜가리가 둥지를 틀고 수달이 뛰노는 고향 탐진강변은 그에게 좋은 「실습공간」이 됐다. 그때부터 고향을 다시 들락거렸다. 파인더를 통해 다시 보게 된 고향은 찾을수록 새로웠다.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않았던 오지. 「옛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생태계의 보고. 하류에는 천연기념물 258호인 무태장어가 서식하고 송사리와 피라미는 물론 칼납자루, 큰납지리, 버들매치, 긴몰개, 돌마자, 모래무지, 갈겨니, 각시붕어 등 토종 물고기들이 아직도 남아있는 청정지대였다.
마을의 역사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다. 탐진강 일대는 근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록의 땅」. 전봉준이 최후까지 항전했던 동학혁명의 현장인데다 여순사건의 격전장. 6·25전까지만해도 1만명이 넘는 주민들이 살았지만 전쟁을 거치며 주민 3분의 1이 희생됐다. 군경과 빨치산의 전쟁은 마을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3채만 빼놓고 모두 불에 타버렸다.
때마침 마을이 댐건설로 수몰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안타까운 마음이 앞섰지만 개인이 나서도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었다.
『수몰소식을 들었을 때 청정자연을 기록으로라도 남겨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개발의 손길을 피해 그나마 남아있던 자연의 보고를 후손에게 알려야 된다고 느꼈지요.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뛰어들었습니다』
한때 사진관을 열었지만 마음은 언제나 고향에 달려가 있었다. 웨딩포토를 찍으며 짭짤한 수입을 올렸지만 그마저도 포기했다.
92년 4월 장흥문화원에서 어렵게 찍은 사진을 걸고 첫 전시회를 열었다. 예상외로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다. 수몰지구 주민 뿐 아니라 북에 고향을 둔 실향민도 찾아와 눈물을 흘렸다. 올해는 800여컷의 사진을 모아 사진집도 제작했다. 그의 소식이 전해지면서 KBS에서 그의 사진기록작업을 드라마로 제작중이다.
단막극 「나는 집으로 간다」. 11월쯤 방영된다. 주인공도 마동욱이란 그의 본명을 사용한다. 11월23일에는 미국 시카고에서도 초청전시회를 개최한다.
『앞으로 수몰지구를 쫓아다니며 기록하는 작업을 계속할 겁니다. 댐이 건설돼 마을이 물에 잠기면 주민들만 고향을 잃게 되는 게 아니죠. 그 물줄기에 사는 수많은 동식물과 아름다운 경치를 추억 속에 묻고 사는 보통사람도 「마음의 고향」을 잃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일까. 그의 사진에 보이는 「고향의 모습」이 눈에 설지 않다.<최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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