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에 의하면, 프랑스의 유력 일간지 '르몽드'는 이번 한국의 대통령 탄핵에 대해 “이 커다란 정치적 혼란이 대통령이 선거법을 위반했다는 작은 사건에서 비롯됐다”면서 “이번 사태는 한국이 10년 전 민주화됐어도 아직 정치적 미성숙함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라고 논평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또 다른 언론의 미국 특파원의 보도에 의하면, 요즘 미국 동북부의 코네티컷주에서도 주지사 탄핵으로 여간 시끄럽지 않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에서의 탄핵은 우리와 조금 다른 모양이다.
코네티컷 주지사인 존 롤랜드가 업자 등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이에 대해 거짓말을 한 혐의로 탄핵 대상에 올랐다는 것인데, 지금 이와 관련해서 연방정부가 진상조사에 착수했고, 주 하원도 조사위를 구성해 탄핵 회부 여부를 심의중이라는데 탄핵 공세가 시작된지 석달이 넘었고, 조사위가 구성된 지 두달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법리공방 중이란다.
이와같은 현상은 탄핵 관련자들은 물론 주민의견을 폭넓게 수렴해야 한다는 정신이 깔려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탄핵의 과정에서 탄핵 대상자에게 충분한 소명의 기회를 줌으로써 ‘공정한 심판’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성추문으로 탄핵에 회부됐던 클린턴 전 대통령의 경우는 13개월이나 걸렸던 것도 이와같은 경우와 다름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 탄핵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온 이후 국회가결까지 걸린 기간은 불과 열흘도 안된다.
탄핵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이번 대통령 탄핵 과정이 적법하게 이루어졌느냐는 것이다. 문제는 시간이 너무 짧아, 국민적인 합의도출도 있을 수 없었을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국민적인 여론 수렴과 대통령의 소명기회도 전혀 주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일 것이다. 현행법은 탄핵안이 발의되면 법사위를 거쳐 본회의에 넘기도록 돼 있고, 법사위는 국감 규정을 준용해서 조사를 할 수도 있다고 돼 있다고 하지만, 이는 강제 규정이 아니기 때문에 탄핵을 발의한 측은 이번 탄핵 과정에서 절차상 하자가 없다고 주장한다고 한다.
그러나 말단 공무원을 파면할 때에도 소명기회를 주는데 하물며 국가 책임자를 탄핵하면서 그 잘못에 대해 공식 논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문제점을 안고 있음에는 분명하다.
여기서 우리는 새삼 우리나라 정치적인 현상에서 '권위주의적인 명분정치'를 확인하게 된다. 달리 말하면, 우리의 정치권이 서로 양보하고 타협할 줄 모른다는 것은 바로 자존심과 명분을 앞세운 자기 중심적인 '도덕정치' 그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서로가 다른 자기중심적인 도덕기준을 내세우고는 서로를 정당한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이러한 도덕정치는 여러가지의 잘못을 종종 저지른다. 첫째는 자기만 옳고 남은 틀리다는 관점이다 보니 자신의 허물에 대해서 관대하지만, 이와 반대로 남의 허물은 매우 엄격하게 재단하고 비난하며 심판한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끊임없는 갈등구조를 심화시키면서 사회적 분란까지 여기한다.
그러니 쉽게 자신에게 실익이 없는 한 절대로 타협같은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이판 사판' 만이 있을 뿐이고 '오기'만 있을 뿐이다. 어제는 비록 동지였다고 하더라도 내 밥그릇을 빼앗으려고 하면 선의의 경쟁자가 아닌 적대적인 적일 뿐이다.
즉 호오(好惡)를 기준으로 갈린 내편과 네 편만이 있을 뿐이다. ‘너 때문에 이 꼴 됐다’는 분노와 증오, 집단 히스테리를 몰고 올 수도 있는 것이다.
비근한 예로, 시작은 같은 동지였으나 선거나 경선을 치르면서 적이 되기 십상인 게 우리 정치적인 현실이다. 총선 후보자를 가리는 경선에서 같은편끼리 싸우고 그 싸움 이후에는 쉽게 승복하지 않을 뿐 아니라 당연히 경선에서 이긴 주자를 중심으로 다시 동지가 되어야 하지만 되레 적이 되어버리는 우리들의 정치 현실도 바로 이러한 극단적인 현상에 다름 아니다.
이것은 비단 정치뿐만이 아니다. 우리나라 극단적인 일부 종교계에서도 이같이 유사한 현상이 존재한다. 기독의 '이웃 사랑'의 정신에서도 우리는 이같은 현상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즉 그들의 경우, 그 이웃은 같은 교일뿐이고 타 교인은 상대해서는 안되는 '사단의 무리'일 뿐이다.
상대방을 인정한다는 것은 자신의 허물도 인정하는 것이 된다. 그러니 상대방을 인정하기 힘든 것이다. 이런 극단적인 자기 중심주의는 물론 절대적인 것이 될 수 없다. 그 '권위'라는 겁데기에 씌어있는 겉치레일 뿐이다. 그것이 벗겨지면 갈 데가 없다. 그래서 고위직 인사들이 그 껍질이 벗겨지면 못숨도 용감하게 초개와 같이 내버리는 것이다. 부산 시장에 이어 대우건설사장이 자살한 것도 따지고 보면, 자신의 허물을 용납하기 어려웠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상대를 용납할 수 있을 때 스스로를 용납할 수도 있는 것이다.
김수환 추기경이 쓴소리 했다가 되레 곤욕을 치르는 형편일 정도다. 구경꾼마저 두 패로 갈려 싸우는 판이다. 잘잘못 따져봤자 소용없다. 잘못하다간 정말 너 죽고 나 죽게 생겼다. 우리사회에 이러한 극단의 이분법 사고가 위험수위에 다다르고 있다는 느낌이다.
극단은 극단을 낳는다. 지극히 집단적이면서 모든 관계를 가족관계로 바꿔 생각하는 단일민족 대한민국이다. 아직도 혈연, 지연성이 강한 것도 이 때문이다.
얼마 전에 치러진 모 정당의 경선. 이 경선 후에 같은 정당의 동지들인데 지금은 적처럼 변해 버렸다. 이처럼 작은 마찰이 더 큰 분노와 증오로 확대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그런 이런 극단이 아니다. 우리의 삶 자체는 꾸준이 앞으로 나아가는 열린 공간에서 존재이다. 충분히 잘못도 저지를 수도, 과오도 저지를 수 있다. 그것을 너그럽게 봐주지는 못할 망정, 자신이 걸어온 것과 다르다고 해서 상종못할 죄인으로 내몰 수는 없는 것이다.
민주주의 근본은 평등과 자유정신이다. 평등정신은 남도 나와 다르지 않다는 정신이다. 자유정신은 개성을 존중하는, 모든 인간을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하는 정신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번 대통령의 탄핵에서 나타난 극단적인 권위주의는 바로 민주주의 근본에 반하는 정신이다. 세계 언론들이 하나같이 한국의 민주주의의 미숙함을 지적한 것도 이 때문인 것이다.
이번에 정치권 여야는 모두 이러한 잘못을 스스로 저지르지 않았는지 깊이 자성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국민들도 이번 기회를 계기로 극단적인 이기심에 물들어 있지 않나 스스로를 자성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진정으로 건강하고 성숙된 사회, 그 사회는 혼자만이 독보하는 세상이 아니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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