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장닷컴/2002-03-23
동백꽃을 보면 ‘오직’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한 사람을 사랑하여 오직 그 사람만 사랑하다가 시드는 여인. 그런 여인 같은 꽃이 동백이다. 여인의 고향은 전라도일 것이다.
흔히 떠도는 이야기로 ‘결혼을 하려거든 전라도 여자와 하라’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전라도 여인의 동백 같은 마음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다. ‘오직’ 한 사람에게 충실하고 음식의 맛을 아는 전라도 여자. 남자들에게는 더 없이 좋은 상대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남도라 일컬어지는 전라도에는 이름난 동백 숲이 많다. 선운사의 동백도 동백이겠지만 오동도와 강진 백련사, 그리고 광양 옥룡사의 동백 숲은 가히 절경을 이룬다.
그리고 또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장흥 장천재의 동백 숲이다.
장천재는 장흥 위씨들의 제각인데, 실학의 대가인 존재(存齋) 위백규(魏伯珪) 선생이 학문을 연마하던 곳이라는 설도 있다. 존재 선생은 장천재 아래쪽에 있는 방촌 마을에서 태어나, 줄곧 이곳에 머물며 독특한 현실비판의식을 담은 저술활동으로 「존재집」22권을 써냈다.
장천재로 가는 길은 우리나라 가옥의 보고라 할 수 있는 방촌 마을과 마을 앞에 우뚝 선 2기의 장승을 함께 구경 할 수 있고, 속살을 어루만질수록 새록새록 정이 드는 천관산이 지척이라 하루길이라면 분에 차지 않는다.
그새 봄 깊어 동백꽃들은 우수수 지기 시작한다. 오직, 내지는 절정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레 떠오르는 동백꽃. 그 극점의 꽃들이 활짝 핀 동백 숲이다.
초라해지기 이전의 몸, 온몸으로 지는 동백꽃을 보다보면 ‘나도 저렇게 죽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통꽃인 동백. 그래서 동백꽃이 질 때는 꽃잎이 하나 둘씩 떨어져 나가지 않고 한꺼번에 온 꽃이 통~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피어날 때 언 하늘을 깨뜨리고 나온 동백꽃이 통~하며 지는 소리에 남아있던 꽃샘추위는 우수수 부수어진다.
동백은 지는 순간까지도 꽃 입술이 마르거나 초췌하지 않다. 사랑도 이런 사랑이어야 한다. 남녀간에 손잡고 연애하는 것도, 얼어붙는 그 무엇을 깨뜨리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연애는 혁명인 것이다.
동백꽃을 보면서 흔들림 없는 사랑에 대해 생각을 한다. 변함없는 사랑의 맹세를 하려거든 동백나무 숲으로 가라. 그곳에서 진 후에 더 빛나는 동백꽃을 주워 목걸이를 만들라. 목걸이를 만들려거든 노끈이나 실을 사용하지 말고, 해 지난 담쟁이 넝쿨 같은 것을 사용해야 한다. 사랑은 늘 자연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마 50~60송이 쯤이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꽃목걸이가 만들어질 것이다. 이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동백 씨를 줍는 일이다. 이제 완성된 목걸이를 연인의 목에 걸어준다. 그리고 사랑을 고백한다. 반드시 눈을 보고 해야 한다.
그리고 가만히 상대의 손바닥에 동백 씨를 올려놓는다.
동백 씨 같은 사랑을, 동백꽃 같은 사랑을, 동백 같은 사랑을, 봄 숲에서 봄 같은 사랑을, 나의 봄인 당신에게 동백 같은 내 사랑을 고백하고 싶다.
장천재의 동백 숲에 풍덩 빠졌거든, 이어진 길을 따라 천관산에 올라 보라.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면 다음을 기약하라. 한 번 오르면 서너 시간은 잊게 만드는 산이 천관산이기 때문이다. 한나절의 여유를 가지고 그 산을 오르고 나면 숨어있던 선경이 품값을 줄 것이다.
(동백나무나 차나무는 직근류이기 때문에 옮겨 심으면 대개 죽어버린다. 곧게 뻗은 뿌리가 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시집가는 딸에게 동백 씨나 차 씨를 주었다고 한다.)
찾아가는 길
■ 자가용 : 광주에서는 화순·능주·이양·청풍·장평을 지나 장흥으로 가서, 다시 관산 가는 길로 간다. 장흥에서 관산으로 가는 23번 국도를 따라가면, 관산읍 조금 지나 방촌 마을이 있다. 방촌 마을 조금 못 미쳐 장천재가 있는데 맞은 편 솔숲에 있는 고인돌군도 볼만하다.
■ 버스 : 광주에서 장흥을 거쳐 회진으로 가는 버스가 30분마다 한 대씩 있다. 회진까지 가지 말고 관산에서 내려 택시를 타야한다. 시간이 넉넉하면 도보로 가도 된다. 바다와 이웃한 보리밭도 볼거리가 된다.
이대흠(시인·리장닷컴 편집장) www.rijang.com
2002-03-23 [18:21]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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