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진댐 수몰 할머니들의 망향가
(kbs .취재파일 4321 [제124회]③ 방영대본)
2002/08/05 일 방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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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 2002년 8월 5일(일) 밤10:40~11:25 / KBS1
■취재 : 모은희 기자 monnie@kbs.co.kr
■제작 : 보도제작국 보도제작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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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은희 기자:
전라남도 장흥군에는 지금 탐진댐 공사가 한창입니다. 수몰지역 대부분의 노인들은 근처 다른 마을로 이사를 가거나 자식들과 함께 살기 위해 고향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거처를 마련하지 못한 채 컨테이너에서 살고 있는 할머니들이 있습니다. 이주보상금을 자식들에게 주어 버리고 생활비도 없이 혼자 사는 할머니들입니다. 고향을 잃고 자식들에게도 소외된 채 외롭게 살고 있는 할머니들의 삶을 취재했습니다.
*모은희 기자:
전라남도에서도 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장흥군 유치면. 이 곳 유치면 용문리 산기슭엔 컨테이너 한 채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컨테이너에는 5명의 할머니들이 살고 있습니다. 모두 수몰지역에서 이주해 온 할머니들입니다. 국 한 가지에 밥을 말아 식사를 합니다. 뼈만 앙상한 팔다리엔 기운이 없습니다. 이 곳 할머니들은 천여만 원 가량의 이주보상금을 받았지만
자식들의 빚을 갚는 등 돈을 다 써버려 남은 게 하나도 없습니다. 집 살 돈도 없고, 자식들도 모시려 하지 않아 컨테이너에서 살게 됐습니다.
*윤이순(77세):
“혼자 살다가 집 다 뜯어버리고, 아프고 죽겄고 그래서 내 친구허고 같이 이러고 살고 있어. 시방 아들 딸이 뭔 필요가 있어.”
*모은희 기자:
하루 중 제일 힘든 때는 정오 무렵입니다. 낮이면 컨테이너가 열을 받아 숙소 전체가 찜통이 되기 때문입니다. 부채 하나로 더위를 견딥니다. 행여 누가 찾아오지 않을까.. 온종일 바깥만 내다봅니다.
치매가 있는 이 할머니는 오빠와 둘이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오빠가 보상금을 가지고 몰래 떠나버려 혼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문기자(64세):
“어디로 이사가 버렸어. 멀리. (잠재워 놓고) 나 잠 자는데 멀리 이사가 버렸어.”
*모은희 기자:
자식들이 있지만 소식이 뚝 끊겼습니다.
*문기자(64세):
“아들들은 객지에 있어. (기자: 자주 와요?) 잘 안 와. 명절이면 오는데 잘 안 와. (이웃 할머니: 내내 봐도 안 보이더구먼 뭐.)”
*모은희 기자:
고향을 잃고, 가족도 잃은 설움을 노래 가락에 담아 실어 보냅니다.
*모은희 기자:
할머니들 가운데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 84살 임금례 할머니의 컨테이너 생활도 어느덧 한 달이 넘었습니다. 할머니에겐 아들이 네 명 있습니다. 첫째는 큰 집에 양자로 간 뒤 발길을 끊었고, 둘째는 얼마 전 암으로 숨졌습니다. 셋째는 스님으로 살고 있고, 같이 살던 넷째 아들은 양어장 사업을 하다 부도가 나 집을 떠났습니다. 아들의 사업이 잘 됐을 땐
넉넉하던 살림이었지만, 망하고 나니 이주보상금은 자신에게 한 푼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임금례(84세):
“빚쟁이들을 불러 내 갖고 다 나눠주고 그러지. 내 손에는 받지도 못해. 양식장 고생만 하고. (한숨 푹~ 쉬며) 기가 맥혀라, 아주 기가 맥혀. 누구에게 말도 못 허겠고.”
*모은희 기자:
갈 곳이 없어 컨테이너에 살면서도 자식 걱정부터 앞서는 게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임금례(84세):
“(넷째 아들을) 한쪽으로 생각해 보면 괘씸허고 한쪽으로 생각하면 또 짠허기도 하고.
돈 벌려다가 그렇게 됐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모은희 기자:
할머니는 밤마다 이웃 할머니 방에 건너가 잠을 청합니다.
*모은희 기자: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 맑은 물이 사계절 흐르고 여름이면 왜가리가 짝을 짓습니다.
조용하고 한가로운 마을입니다. 하지만 요즘 들어 급격히 변하고 있습니다.
*모은희 기자:
“탐진강 상류인 장흥군 유치면입니다. 댐이 완공되면 이곳 11개 마을, 2천여 주민들의 생활터전은 호수 밑바닥으로 가라앉게 됩니다.”
*모은희 기자:
여의도 면적의 1.2배인 10.3 평방킬로미터의 땅이 내년 가을이면 수몰선 밑으로 사라집니다.
*민경수(한국수자원공사 공무과장):
용수난이 심각한 전남 남부권 목포시를 포함한 9개 시군에 안정적으로 용수를 공급하고 탐진강 하류지역의 홍수피해 경감 효과가 있습니다. 또 수력발전을 통한 청정 에너지 생산에 효과가 있습니다.
공사는 80% 정도 진척됐습니다. 수몰민의 이주정착에 필요한 보상금 4천7백여억 원도 지급됐습니다. 마을은 텅 비고 사람들의 발길은 끊어졌습니다. 보상금을 가족들에게 다 주어버려 오갈 데 없는 할머니 5명은 컨테이너로 옮겨졌습니다. 다음 날, 임금례 할머니가 옛 집을 보러 길을 나섰습니다. 대문이 있던 자리엔 흙더미가 가득 쌓였습니다. 아름드리 팽나무만이 옛 집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백서른 평이 넘는 집에서 남 부러울 것 없이 살던 기억들이 떠오릅니다. 장독은 깨지고, 챙기지 못한 짐들은 땅 속에 파묻혔습니다. 할머니는 이삿짐도 꾸리지 못하고 집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임금례(84세):
“아침에 와서 나더러 내일 나가라고 그럽디다. 나가면 그날 500을 준다고. 원 세상에 하루라도 연기를 해 줘야 하는데, 하지도 않고 그날 낮에 12시에 왔어. 사람이 살고 있는데 뜯어라우? 4명이 나를 차에다 떠 밀어 버렸어.”
*모은희 기자: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다시는 못 볼 옛 집을 마음 속에 새겨두려는 듯 할머니는 자리를 쉽게 뜨지 못했습니다. 임금례 할머니가 컨테이너로 황급히 옮기게 된 건 집중호우 때문입니다.
*김기정(장흥군청 이주대책계장):
“장마철 기간 내에 비가 와 물이 침수되게 되면, 그 분들이 떠나야 하는 실정이 되다 보니까 장흥군에서 임시적으로 약 한 4개월 이상 금년 10월까지 임시 거처를 할 수 있도록보호시설을 마련하게 됐던 동기가 됐습니다.”
*모은희 기자:
댐 공사 때문에 강물을 가두다 보니 비가 150밀리미터 이상 내리면 상류지역 마을은 금세 물에 잠기기 때문입니다. 장흥군내를 수소문해 임금례 할머니의 손자를 만났습니다. 손자는 올해 군대에 간다고 합니다. 할머니를 모실 아들들은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임금례 할머니 손자 :
“(할머니 혼자 사시니까 어때요?) 안쓰럽죠, 조금. 아버지도 안 계시고. 할머니 모시는 게 우선 문제니까. 상의해서 같이 사시든지.. 자식들이니까. 제가 할머니 모시는 거에 대해 (아버지 형제들에게) 뭐라고 말씀을 못 드려요.”
*모은희 기자:
다른 할머니들 경우도 마찬가집니다. 자식들은 모실 수 있는 형편이 안 된다고 얘기합니다.
*문 할머니 큰아들:
“저도 (컨테이너에) 계시고 그래서 가슴이 아픈데, 그 전 같이 사업이라도 잘 되면 어머니한테 집 한 채라도 지어주고 싶은데 그게 아니잖아요. 지금 어려운 상태라 그럴 여유가 없어서..”
*모은희 기자:
컨테이너에 살고 있는 할머니들에게 한 가닥 희망이 생겼습니다. 수몰 지역에 살던 한 독지가가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컨테이너 할머니들을 위한 작은 건물을 짓고 있기 때문입니다.
20년 전 심한 화상을 입고 겨우 목숨을 건진 이 독지가는 자신처럼 고향 마을을 잃고 외롭게 살고 있는 할머니들을 위해 평생을 바치기로 했습니다.
*문주남(46세):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것이 덤으로 살고 있는데 남은 삶을 나의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돕고 싶고 봉사하고 싶은 생각이 있어서 이 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모은희 기자:
건물은 다음 달에 완공됩니다. 하지만 방이 6개 뿐이라 컨테이너에 살고 있는 할머니들 외에 스무 명이 넘는 다른 노인들을 받아들이기엔 부족합니다. 할머니들이 생계비나 의료비가 없는 것도 문젭니다. 지방자치단체의 지원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한 실정입니다.
*모은희 기자:
날이 저물자 마을 회관 앞으로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듭니다. 아직 마을을 떠나지 않은 주민들이 한데 모여 조촐한 송별 잔치를 벌이는 날입니다. 술 한 잔에 아쉬움을 털어 넣습니다. 떠나려는 마음은 무겁습니다. 열 일곱에 시집 와 평생을 이 마을에서 보낸 90살 할머니도 내일이면 떠나야 합니다.
이 마을 노인들도 제2, 제3의 컨테이너 할머니처럼 될 날이 머지 않았습니다.
*한재희(유치면 덕산리 이장):
“아들들은 즈그들 밥 먹기도 바쁘고, 또 우리가 가서 붙어 있으면 자식 집에 붙어 있을려면 단 얼마라도 가져 가야 되는데, 보상을 받을 것이 없어 못 받았으니 가도 못해. 나라에선 목포 등 9개 시군의 용수 공급과 홍수 방지를 위해 댐을 짓는다지만, 터전을 잃은 주민들의 마음은 아프기만 합니다.”
*모은희 기자:
고향을 떠나지 못하는 할아버지, 할머니. 자식들과 함께 했던 정든 추억들은 깊은 물 속으로 가라앉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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