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번째 시집..“비움과 채움, 열정, 생명의 변주곡”그려
장흥신문 발행인이며 시인인 김선욱 시인(62)이 네 번째 시집 ‘지는 꽃이 아름답다’를 출간했다(새로운 사람들刊/양장/신국판).
제3시집 ‘강은 그리움으로 흐른다’ 이후 1년 반 만에 펴낸 것이다.
제3시집이 2판, 2천여 부가 팔렸을 정도였으니, 무명시인 시집으로서 상당히 팔린 셈인데 이번 시집에 대한 독자들의 호응도 역시 좋을 것 같은 예감이었다.
그리하여 이번 시집을 보고 몇 가지 궁금한 점이 있어 직접 김선욱 시인을 만나, 허심탄회하게 묻고 그 답을 들어보았다.
■ 양지에서 피어올린 건강한 시들
-먼저, 이번 시집 이전의 <강은 그리움으로 흐른다>를 보고 몇 번씩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핑 돌곤 했거든요. …한승원 시인님이, 시인님의 시는 시가 아니라 ‘초혼의 슬픈 축문’이라고 했던 것을 기억하는데요.(<강은 그리움..>의 발문에서 밑줄 그어놓은 부분을 펼쳐보이며) …보세요. “그의 치열한 그리움은 그로 하여금 시시때때로 초혼을 하게 하고, 초혼한 채로 그 혼령과 함께 삶을 영위한다.
그의 그리움은 마침내 시라는 매개체를 통해, 혼령과의 하나 되는 오르가즘에 이른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그리움은 신화적인 신성을 가진다. …그리하여 시인이 바라본 모든 풍경은 시로 꽃으로 피어난다. 그가 바라본 풍경에는 잃어버린 사랑이라는, 그리하여 버섯처럼 움터난 그리움이라는 상처가 프리즘으로 작용한다. 그 프리즘에 의해 투영된 풍경에는 자연 신성이 서식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것은 신화가 된다”고. …당시 그 시집은 사모님과 사별한 이후에 써진 시들로 아는데, 그래서인지 시를 잘 모르는 제게도 김 시인님의 시들이 아주 절절했거든요.. 헌데 이번 시는 예전의 시들과 천양지판으로 읽혀졌습니다.
▶김선욱=아내가 간암으로 투병할 때 시를 쓰기 시작했고, 아내가 눈을 감은 후 거의 1년 동안 시 한 편도 쓰지 못했어요. 그리움의 진탕 속이었다고 할까요? 거기서 헤어나질 못한 거죠. 그러다, 딸애 유골을 집 뒷 대밭에 묻으면서 남은 생애 딸과 아내를 위해 당당히 맞서리라는 마음으로 시를 한 편 두 편 쓰기 시작한 거죠. 해서 그 무렵은 거의 떠나간 사람, 아내에 대한 그리움의 시들이 나올 수밖에 없었지요.
아내를 먼저 보냈다는 죄책감, 슬픔, 고독, 그리움을 시로 써 내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도 전 여전히 그리움의 진탕에서 한 걸음도 떼놓지 못한 상태였던 거죠. 그리고 <강은 그리움을..> 이후부터, 비로소 시를 통해서 점차 세상 앞으로 당당히 나설 수 있게 되고, 이번 <지는 꽃이..>에서와 같은 시들이 나올 수 있었던 거죠.
- 그래서입니까? <강은 그리움..>이, 어디선가, 이전 음지에서 피어낸 그리움의 시편들이었다면, 그 이후로 써진 즉 <지는 꽃이..>의 시들은 음지를 극복해낸 양지에서 피어올린 그리움, 열정적인 사랑 같은 것으로 표현했던데요.
▶김선욱=어느 기자가 그리 표현했더군요. 어쩌면 제대로 파악했다고 할 수 있어요. 사실이기도 하고요.
- 허면 사랑도 다시 하시구요… 소문이 그렇던데(하하하, 굳이 확인까지야 해줄 필요는 없지만).
▶김선욱=사실입니다. 사랑도 하고, 제 삶이나, 시나, 사랑에서 더 치열하게 덤비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비움, 채움, 열정의 세계구축
-전체 시를 읽어보고는, 시를 잘 모르는 제게도, 메시지가 강렬하다, 착상이 참 좋다, 시적 상상력이 기발하다는 등의 느낌이었지만 전체적으로 시인님의 시 세계가 쉬이 정리가 안 되어 시평을 읽고 보고 다시 읽어 보니 비로소 확연히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비움에 대한 시평 이후부터는 김 시인님의 비움- 채움- 광애로 표현되는 열정, 생명의 환희 등이 시와 함께 손에 잡힐 듯 그려지더군요. 혹 평자도 시인님의 <강은 그리움으로..> 시를 읽어보셨는가요?
▶김선욱=아닙니다. 미처 제가 시집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메일로 주고받으면서도 저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아 그 시집을 읽어보지 않은 듯 했어요. 이번에 한꺼번에 드려야겠다는 생각입니다. 평자는 단순히 제가 이메일로 보낸 시들만 읽어보고 평자로서 이번 시집의 제 시 세계를 분석한 것이지요.
그런데, 앞부분에서는 제 자연관에 대해서 시적 자아와 분리되지 않은 원융한 하나로 보고, 자연에 대한 애정과 일체감, 즉 자연과 동일성에서 시적 서정이 동력으로 표현되고 있다고 정의했더군요.
-시인님의 자연관은 사실 새로울 것도 없다고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자연관에 뒤이어 분석해낸 ‘하찮은 것에 대한 통찰과 역설의 시선을 가진 시인’으로 본 점은 저도 동감했고 감동적이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시인의 시선도 높게 평가했고요.
▶김선욱=그래요? 전, 전기철 시인님이 제 시를 중간부분부터 비움과 채움, 열정, 생명에 이르는 시적 세계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는 점에 대해서, 솔직히 말하면, 저도 조금은 놀랐습니다. 어느 만큼은 생각은 했지만 여태 그렇게 까지는 제 전체 시를 그렇게 논리적이고 통시적으로 파악하고 있지는 않았거든요.
-아마 그렇다면 시인님의 자질, 잠제적인 통괄과 직관을 높게 본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 저는 특히 시인님의 시에서 연작시 ‘먼지’ 연작시와 ‘광애’가 아주 좋았습니다. 이에 대해서 답을 주시지요. 동기라든다지...
▶김선욱=음지에서 슬픔을 딛고 양지에 서서 보니, 요즘은 100세가 대세라곤 하지만, 건강이 부실한 제겐 여생이 얼마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고민하게 만듭니다. 하여 사는 날까지 이전의 삶보다 할 일도 능히 해낼 수 있도록 촌음도 아끼며 더욱 치열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다다르지요. …시도 미친 듯이 써 보고, 사랑도 미친 듯 해보고 살겠다는 생각을 말입니다.
그러면서 모든 것이 인간의 유한성과 사후의 문제와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거기서 생각이 이어지면서 인간의 유한성, 죽음도 순환에 지나지 않는다는 대자연 원리와 교감이 이루지고, 눈에 보이는 세계 너머의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까지 감지되고, 그러다가 무가치한 존재며 하물며 아주 하찮은 먼지의 존재로까지 시상이 확대되고…
-아, 그렇게 되는군요. 평자의 지적처럼 고정관념과 타성으로부터 자유로와지면서 무가치한 것도 시인이 사유의 중심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그렇다면 광애는요? 보통 열애라는 표현은 자주 쓰던데요.
▶김선욱=시인은 보통 평범한 상상은 뛰어넘지요. 그것을 ‘상상의 변용’으로 표현하기도 하는데요…. 즉 상상에 또 한 번의 상상을 한다는…. 여기서는 그 정도로 이해해주시길….
■ ‘정신의 시’에 치중해 와
-대충은 짐작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시인님과 관련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데요 ...요즘 자주 한국 서정시의 위기론이 대두되기고 하고, 시가 난해해지면서 독자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는데요. 제 짧은 소견으론 시인님의 시 같으면 많은 독자들도 공감하면서 찾을 것 같거든요.
▶김선욱=제가 간단히 말하기엔 다소 어려운 질문인 것 같군요. 다만 제가 아는 상식 수준정도에서 말해 본다면....우선 제 경우부터 소명하도록 하지요.
한승원 시인, 우리나라 대표적인 소설가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시집도 5권이나 낸 중견시인이기도 하지요. 그분이 제 시에 대한 평에서 “김선욱 시인은 많은 수사와 기교를 동원하지 않는다. 엉너리와 언구럭과 수다를 모르고 정공법적인 직설적 시어들만 …소탈하게 구사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시인의 문을 들어섰지요.
시는 보통 ‘정신의 시’와 ‘기교의 시’나 또는 ‘실험적인 시‘로 대별한다고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나라의 현대시도 서구의 상징주의와 주지주의,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세례를 받은 이후, ‘정신의 시’보다 ‘기교의 시’나 ‘실험적인 시’에 방점을 두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젊었을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 공부를 해보지 못한 저의 경우, 기교의 시에 대한 공부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천부적인 재능이나 오랫동안 시 공부를 해 온 것도 아니어서, 더욱 시어를 조탁하고 시구를 연마하고 사물과 정서를 잘 묘사하는 일, 이를 테면 비유의 참신함이나 시적 형상화의 진경 그리고 참신한 이미지의 조합, 새로운 시의 문법 같은 연구는 당연히 필수적이었음애도 불구하고 늦은 나이에 시를 공부한 제 경우, 이런 일에 매달릴 수가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하여 아예 처음부터 ‘기교의 시’나 ‘실험적인 시’에 대한 본격적인 공부는 접어두고 ‘정신의 시’에 중점을 두며 작시해 온 것이어서, 보통 독자들도 제 시를 난해한 시로 보기보다 쉽게 접근이 되는 시로 이해하는 것으로 압니다.
■서정시, 위기인가
-서정시 위기에 대한 생각은요?
▶김선욱=우리 현대시사에서 많은 시인들이 순수 서정시를 통한 세계와의 교감을 거부하고 다양한 실험을 통해 새로운 시 형식의 문법을 탐구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더니즘 등의 영향 그리고 여기에 현실적으로는 시대와 맞부딪쳐야 하는 자아 성찰에 따른 결과이기도 하고, 도시화 도시문명이 가져온 가정 해체나 전통 질서의 붕괴 등, 소설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다난한 현실을 어떻게 시인 혼자 아름답게 받아들일 수가 있는지를 의심하면서부터, 즉 시대가 요구해 온 시인으로서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확인하면서부터 다양한 시적 실험과 새로움 등 시 형식의 문법을 탐구해 왔다고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이때부터는 당연히 전통적인 의미의 서정을 외면하거나 거부하고 저항하는 움직임이 드러나게 되고, 정치 사회적으로 안정기를 찾게 되는 90년대 이후 들어 이러한 시적 경향이 더욱 두드러지게 변화되어 왔다고 할 수 있어요.
한 마디로 전통적인 자연이니 사랑이니, 민족이니 사회니, 가족이니 하는 등의 소위 ‘거대한 인식’ ‘거대한 담론’으로부터 자유로와지면서 주변의 작은 이야기, 사소한 일상에 대한 느낌, 자기 일상적인 고민 등을 시로 표현해 내는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전통 시에 익숙한 한국 독자들에게 시가 점차 멀어지는 경향을 띠게 되었다고 할 수 있지요.
이와 함께 시에서 수용되어지는 세상의 크기도 협소해지고 주제 즉 시제도 지극히 사소해지고 전통적 서정의 중심에 있었던 자연이라는 것도 점차 사라지고 심지어 남녀간의 애정의 표현도 점차 사라지게 되지요 ..결국 현재에 이르러 한국의 시인들의 경우, 서정시의 자리가 설 자리가 그만큼 좁아들면서 독자를 잃어가고 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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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제기되는 과제가, 잃어버린 많은 독자를 확보하기 위해 대중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시의 방향을 중심으로 변화를 거듭해가는 시를 쓸 것이냐, 아니면 꾸준한 시적 실험을 통해 창의적 형식과 독창적 내용을 추구하면서 좁아진 독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시를 더 깊이 있게 써 걸 것이냐의 하는 선택의 기로에 가로놓여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몇해 전 도시 문명코드에 접속하여 변혁과 혁신을 통한 실험과 유희를 찾는 새로운 서정을 모색하자는 이른바 ‘미래파’ 시인들이 등장이나 또 하나는 ‘난삽하고 장황하며 소통부재의 시들(주로 미래파 위주의 시들)이 가지는 몽환적 속박으로부터 우리 시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극서정시의 길’이라며 이에 대한 새로운 서정으로 한 ‘극서정파’가 생겨난 것을 봐서도 바로 현대 한국시는 여전히 모색점에 서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