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딸처럼 보살피겠다며 관계기관에 선처 당부

“배고파 저지른 범죄인 만큼 선처해 준다면 친딸처럼 돌보겠습니다.”

장흥군 장흥읍 건산리에서 목욕탕(탐진각)을 운영하는 정종훈(52)씨가 동네 후배들과 함께 부모로부터 버려진 뒤 떠돌아다니다 배고픔을 참지 못해 식당에 들어가 금품을 훔친 혐의로 구속된 L(14·중 1년 중퇴)양을 돕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어 화제다.

정씨는 지난달 27일 광주 북부경찰서와 광주지검을 찾아 “사흘 굶어 도둑질 안 할 사람 없다는 속담이 있다”며 “L양이 꿈많은 소녀로 자랄 수 있도록 선처해 달라”고 호소했다.

정씨는 “선처해 준다면 장흥 집으로 데리고 가 함께 살면서 학교도 보내겠다”고 담당 검사에게 약속했다. 이어 L양으로부터 피해를 당한 시민들도 전화나 직접 찾아다니며 L양의 딱한 사정을 전하고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피해를 당한 식당 아줌마 등은 선뜻 합의해주었다. 정씨는 피해자들의 합의서와 함께 “L양을 잘 돌보겠으니 선처해 달라”는 탄원서를 6일 광주지검에 제출하기로 했다.

1남 3녀를 둔 정씨가 L양 돕기에 나선 것은 자신도 어렸을 때 겪은 배고픔을 결코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L양도 생면부지의 정씨와 면회하는 자리에서 “함께 살고 싶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5세 때 부모가 이혼한 L양은 지난해 9월쯤 밀린 방값을 독촉하는 집주인을 피해 아버지가 가출한 뒤 졸지에 떠돌이 고아 신세가 됐다. 배가 고픈 L양은 지난 1월 영업이 끝난 식당에 몰래 들어가 금품을 훔치다 경찰에 붙잡혔으나 초범이어서 겨우 풀려났다.

하지만 갈 곳 없는 L양은 유일하게 잠을 잘 수 있는 컴퓨터 게임방에 들어갈 돈이 없어 다시 식당에 들어가 금품을 훔치다 경찰에 구속됐다.

정씨는 “무엇보다 이처럼 딱한 L양을 돌보려는 나의 뜻에 불평 없이 동의해준 부인과 자녀들이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장흥교도소 교화위원으로 활동하던 1990년에도 15년형을 선고받고 출소한 A(45)씨가 갈 곳이 없다는 소식을 듣고 집에서 1년여 동안 함께 살면서 보살핀 뒤 취업을 알선해주기도 했다. 또 지난 89년에는 가출한 소녀를 돌보기도 했다. 지금도 강진군의 보육원을 수시로 찾아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아무리 각박한 세상이지만 어려운 이웃을 결코 외면하지 않는 정씨의 마음으로 세상은 훈훈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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