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고버섯으로 장을 상품화 한다
이코노믹 리뷰/190호/2003.12.20
전남 장흥군이 최근 지방공기업인 장흥 표고유통공사에 외부 경영 전문가를 영입, 제 2도약을 노린다해서 새로 지휘봉을 잡게 된 그를 만나 보기로 했다.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동안 줄곧 영업·마케팅분야에서만 잔뼈가 굵은 장흥 출신의 임영태(44) 사장.
그를 만나러 나선 날은 초겨울인데도 이미 한 겨울에 접어들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기온이 뚝 떨어졌다. 장흥은 시골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남도서 몇 안 되는 곳이며 천혜의 자연자원을 간직한 곳이다. 때묻지 않았다는 것은 때론 듣기 좋은 말이지만 개발이 더딘 낙후한 지역임을 상징하기도 해 칭찬만으로 들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장흥 표고버섯’을 제일의 대표명품으로 만드는 일을 맡은 지 3개월 가량 됐다는 임 사장의 첫 마디는 의외였다.
“각종 개발에 떠밀려 소중한 자연자원이 오염된 여느 농촌지역과는 달리 촌스러움을 간직한 지금의 장흥을 오히려 상품화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그의 말과 표정에는 자신감이 넘쳐났고 고향을 위해 민간기업서 쌓은 경험을 맘껏 펼쳐 보이겠다는 각오가 엿보였다.
임 사장이 태어난 곳은 인근에 있는 강진군 군동면이다. 부친이 자녀교육을 위해 장흥으로 옮겨와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을 이곳에서 보냈다. 이후 15년간 정들었던 고향을 떠나 광주로 온가족이 이사를 했다.
그는 고교시절 푸른 제복을 입은 육군 장교에 매력을 느껴 장교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육군사관학교 시험에서 두 번이나 고배를 마셨다. 대신 육군3사관학교에 들어갔다가 2년 만에 중도하차, 사회에 진출키로 맘을 고쳐먹었다. 청년시절 그가 겪었던 시련은 오히려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소중한 자양분이 됐다고 한다.
80년대 초 동원산업과 첫 인연을 맺었을 당시, 김재철(현 동원그룹 회장) 사장은 모든 이들이 외면하던 영업분야 일을 그에게 권했다. 앞으로는 관리직보다는 세일즈 분야가 회사를 살리고 나라를 살리는 시대가 온다는 것이었다.
영업직에서 출발, 한눈 팔지 않고 일해온 덕분에 입사 3년6개월 만에 최연소 신설 영업소장을 맡은 데 이어 최연소 지역책임자로 발탁되기도 했다. 영업과 마케팅 분야서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은 결과다.
임 사장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장흥군은 예부터 국내 최대의 표고버섯 생산지다. 이는 표고버섯 종균이 자라기에 최적의 자연 조건을 지닌 데다 표고 배양에 사용되는 원목인 참나무 상수리나무가 풍부하기 때문.
민간기업을 떠나 임 사장이 옮겨 온 지방 공기업인 장흥 표고유통공사는 지난 92년 전국서 처음으로 민관합자로 자본금 10억원을 들여 설립됐다. 표고버섯 주산지인 장흥군이 표고버섯 수매와 ‘장흥 표고’로 상품 브랜드화해 판로를 확보하는 등 재배농가를 보호 육성하고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토록 하자는 게 목적이었다.
하지만 원산지이면서도 최근 몇 년 새 표고버섯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타 지역에 시장 선점을 놓쳐 ‘장흥 표고’ 브랜드화에 실패, 옛 명성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 유통공사가 12년간 현실에만 안주해 온 결과였다.
장흥군은 이 같은 경영부진을 털고 표고유통공사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기존 낙하산식 인사에서 과감히 벗어나 공모를 통해 새로운 경영인을 발탁했다. 고향을 떠난 지 꼬박 25년 만에 고향의 대표 특산품을 되살리는 일을 맡게 된 것이다.
그에게 표고유통공사 운영 활성화뿐 아니라 ‘장흥 표고’를 국내 제일의 대표 명품으로 새롭게 태어나도록 하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한 셈이다.
“동원산업에서 근무할 당시 보성 녹차를 브랜드화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지역 농·특산물도 마케팅에 주력하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지역 농·특산물도 대기업과 연계해 브랜드화할 경우 시장서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임 사장은 이 같은 노하우와 자신감을 바탕으로 장흥표고의 상호 상표 브랜드를 개발하고 포장과 디자인을 더욱 고급화하는 등 ‘장흥 표고’의 브랜드화에 우선 진력키로 했다. 또 기존에 개발·판매되고 있는 표고 음료 등에 대해서는 맛과 디자인을 모두 리뉴얼할 계획이다.
장흥서 재배한 ‘生표고’는 맛과 향이 뛰어나 벌써부터 서울 등지서 인기가 높다고 한다. 한 달 가운데 한 주 동안 수도권 등 대형 백화점 할인점을 돌아다니며 영업을 해오면서 확인한 부분이다. 이처럼 자신이 직접 나서 ‘발품’을 파는 데는 지역 공기업 사장이라는 명함만 갖고 폼잡지 않겠다는 자신과의 약속 때문이다.
자신이 쌓아온 영업·마케팅 분야의 인적 네트워크를 최대한 활용하기로 한 마당에 그 역할을 다하고 싶은 것이다. 더욱이 장흥군에서 자신을 발탁한 것은 그런 점들을 높이 샀던 만큼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미 내년 1월부터는 몇몇 백화점과 할인점서 장흥 생표고 시식행사를 열기로 하는 등 점차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또 최근에는 영업·마케팅 분야 인력을 보강하는 등 장흥표고의 마케팅에 공을 들이고 있다.
표고버섯이 고가 상품이라는 소비자 인식을 바꿔 놓기 위해 상품을 다양화할 생각이라는 그는 가정에서 친숙하게 먹을 수 있도록 소포장 상품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처럼 저가상품 개발 등 상품 다양화를 꾀해 장흥표고의 브랜드 이미지를 높여 나가면서 마케팅에 주력, 판로가 확보되면 재배농가들이 자연스럽게 안심하고 생산에 전념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판매방식도 보성 녹차처럼 ‘투웨이 방식’을 도입했다. 투웨이 방식은 대기업과 제휴를 맺어 한편으로는 대형 백화점 유통업체를 공략하고 또 다른 편에서는 지역 유통시장을 파고든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그는 상품 디자인 고급화와 질 높은 종균 개발 등에 나서기로 했고 여기에 소요될 재원은 장흥군으로부터 10억원을 증자하고 금융기관서 단기자금 4억원 가량을 확보할 예정이다.
“주변의 기대가 커 부담이 되긴 하지만 지역 농·특산물도 정확한 컨셉트와 타깃을 잡는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말하는 임 사장은 “자리에 앉아서 하는 경영이 아니라 부지런히 발로 뛰는 경영인이 되겠다”고 했다.
이제 ‘장흥 표고’의 성공 여부는 누구보다 ‘지역 농·특산물도 성공할 수 있다’는 강한 신념을 가진 그의 어깨에 달렸다.
이력/ 1959년 전남 강진 출생/ 광주 금호고/ 육군 3사관학교/ 동원산업 근무/자영업 3년/ 현재 장흥표고유통공사 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