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몰민의 마음을 껴안으며
전라도 닷컴/한결가족 여행기/2004,02,07
가까운 곳에 있으면 자꾸만 그 가치를 잊어버리곤 한다. 자주 대하기에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 착각하지만 실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것도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맘만 먹으면 언제라도 쉽게 대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기고 있는 까닭이다.
우리가족에게 장흥의 '가지산'이 딱 그랬다. 가지산은 선종구산 중의 하나로 '보림사'를 품고 있는 산이다. 보림사는 일년에도 몇 차례씩 들르는 곳이므로 너무나 익숙하고 잘 아는 곳이다. 한결엄마의 고향 '유치'에 속한 터라 초등학교 시절부터 소풍도 가고 가족 나들이도 가는 그런 곳이었다 한다.
그런데 그렇게 자주 보림사는 들렸으면서도 막상 가지산을 오른 때가 언제였는지는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걸 보면 꽤 오래된 것만은 분명하다. 장흥지역 산이야 그 유명한 천관산은 물론 제암산과 사자산, 수인산, 억불산, 근처 국사봉 등 어지간히 밟았는데도 가까이 있어 오히려 지나친 것이다. 누군가 가지산 오르는 길을 묻기라도 했다면 참 부끄러울 뻔했다. 반성을 하며 산행 이야기를 나누던 차에 마침 한결외가에서 가족이 모이기로 약속을 했기에, 이번 기회에 가지산을 들리자며 새벽부터 길을 나섰다. 가는 도중 "겨울철인데, 등산로가 괜찮을까나"라고 걱정까지 했다.
산행은 보림사가 자랑하는 동부도가 있는 쪽에서 시작한다. 가볍게 신발끈을 묶고 부도에 눈길을 준 뒤 길을 나서는데 널찍하고 말끔하게 잘 닦여 있는 길, 내려오는 길의 차안에서 했던 걱정이 조금 무안해졌다. 안내판에 야외학습장도 갖춰져 있고 삼림욕장도 곳곳에 설치돼 있다는 걸 보니 산길도 제대로 놓여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든다.
완만한 경사로 시작되는 등산로는 참 좋다. 수북히 쌓인 떡갈나무 잎과 솔가리가 푹신할 정도다. "갈쿠로 서너 번 긁으면 기냥 한 망태 금방 되불겄구만" 솔가리만 보면 어릴 시절 나무하러 따라다니던 때가 절로 떠오르고, 지금과 그 시절을 엮으며 우리 부부는 함박웃음꽃을 피우는데 한결이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하긴 산감 몰래 한 망태 해서 뒤안에 숨겨 놓고 조금씩 불을 땠던 그 시절을 눈에 보이지도 않는 도시가스나 때고 사는 한결이가 알 턱이 없지. '갈쿠나무'와 '산감'이야기를 들려준다. 산감이 어찌나 무서웠던지 어린 시절의 우린 사극 속에서나 나오던 '상감'인 줄 알았다는 이야기에 다시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그래도 좋다. 그 시절을 추억으로 이야기 할 수 있으니.
청에서 단단히 손을 봤는지 길도 널찍하게 뚫어 놓고 길가의 잔가지도 쳐서 그야말로 삼림욕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게 정성도 느껴지고, 기분도 '룰루랄라' 콧노래까지 나온다. 겨울산행인데도 날씨까지 도움을 줘 얼굴을 스치는 바람이 상쾌하다.
20여분 정도 걸으니 힘차게 솟은 바위가 나타난다. '망원봉'이라 이름 붙여졌는데, 유치댐 건설로 고향을 잃은 수몰민들이 옛 마을터를 바라볼 수 있는 곳이란 설명이 붙어 있다. 안내문 그대로 산허리를 잘라 길을 내고 또 물을 가둘 댐의 모습이 희뿌연 너머로 제암산이랑 사자산이랑, 억불산까지 눈에 들어온다. 잠시 눈길을 둔다. 이런 곳에 서면 한결엄마의 표정이 좀 그렇다. 고향을 물속에 묻는 이들의 마음, 글자가 부족할 것이다.
조금 더 가자 갈림길이 있고 왼쪽으로 전망대가 서 있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오른쪽이다. 앞서가던 한결이가 정자가 있는 왼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거기 가면 다시 내려와야 하는데 괜찮겠니?" "그래도 전망대는 꼭 가 봐야 하는 것 아니에요?" 기특한 녀석. 금년 들어 한결이가 많이 자랐다. 몸도 커졌지만 산행을 하는 마음가짐도 많이 의젓해졌다. 자연과 함께 한 덕이다.
전망대는 앞이 탁 트여 시원스럽다. 옹기종기 들앉은 보림사의 가람배치가 한 눈에 쏘옥 들어온다. 가족들이 모여 얼굴 맞대고 정겨운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모습, 넓은 평지에 적당히 배치된 모습이 친근하고 넉넉하다.
정상으로 가는 길도 그리 험하진 않다. 약간 경사야 지지만 산길이 다 그런 거니까. 둘이 나란히 걸어도 될 만큼 너른 길이라 아들의 손을 꼭 잡고 오른다. 이렇게 좋은 산이 있었냐며 쫑알대는 걸 보니 기분이 오르는 모양이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우리 세 식구만이 전세 내서 가는 길, 녀석은 더욱 신나 어서 가자며 외려 우릴 재촉한다.
거친 숨 쉴 새도 없이 꼭 한 시간만에 정상(551m)에 도착. 제법 큰 바위들이 서로 자랑을 하고 있다. 신라 말 원표대사가 인도에 있을 때 신비한 기운이 삼한의 밖 아득히 먼 곳에서 비치자 그 기운만을 바라보고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마침내 이곳을 찾으니, 산세가 인도의 가지산, 중국의 가지산과 같아서 가지산이라 이름지었다고 하는데, 명산이야 알아보지 못하겠지만 참 편안하고 넉넉한 산인 것만은 분명하다. 규모는 작지만 올망졸망한 산세가 예사 산은 아니라는 느낌도 전한다. 천관산부터 무등산까지 보이는 조망도 참 좋다.
그래도 겨울인지라 정상에서 맞는 바람은 매섭다. 겨우 귤 하나 까먹고 하산길을 재촉한다. 이제는 반대쪽이다. 서북쪽 능선을 타는데 처음엔 경사가 만만치 않은데다 며칠 전 내린 눈발이 조금씩 남아 있어 미끄러운 게 꽤 위험하다. 결이의 손을 꼭 잡고 천천히 발을 떼는데, 올라왔던 길과는 많이 다른지 "이 길 맞느냐"고 몇 번이나 되묻는다. 다행히 걱정은 그리 하지 않아도 될 듯싶다. 비탈진 바위를 두어 개 넘자 예의 평평한 산길이 나타난다. 솔숲도 나오고 안내판도 나오고, 운동시설도 갖춰져 있다. 산책길이나 다름없다.
소나무숲은 삼림욕장을 만들어 놓았는데 쭉쭉 뻗은 낙락송이 멋지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소나무가 있어 다가가니 '봉덕송'이란 이름패가 있다. 한 마리 봉황이 하늘을 나는 듯한 모습이라서 그런 이름을 얻었다는데, 중심은 말끔하고 위쪽으로만 넓은 팔을 벌려 가지들을 친 게 정말 새가 나는 모양처럼 보이기도 한다. 수령이 300년 정도 되었다는데, 한국동란 때 이 일대가 전부 불에 탈 정도로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는데도 살아 남았다니 더욱 당차 보인다.
산보하듯 내려가는 길. 이번에는 비자숲이 나타나 즐거움을 더해준다. "구충제로 쓰이는 것 아니에요"라며 결이가 또 아는 체를 한다. 녀석의 머릿속에 든 과학적 지식은 우리도 가늠하기 어렵다. 비자나무들은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숲을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데, 그 우람함과 특이함이 꼭 다른 나라에 온 느낌이다. 거기다 야생 차나무가 지천이다. 그 넓이가 100ha나 된다나. 보림사에서 이렇게 많은 야생차가 자생하고 있다는 것엔 한결엄마도 놀란다. 위로는 떨 벌어진 비자나무들, 땅엔 겨울의 한기를 뚫고 푸르른 차나무들, 꼭 생각지도 않았던 떡을 얻어먹는 기분이다. 포만감이 느껴진다. 참으로 다양함을 전하는 산이다.
얼마나 사용할까마는 자갈을 다듬어 '지압로'도 만들어 산책길을 이은 정성이 전해져 온다. 결이가 팔짝팔짝 신나 한다. 이렇게 여기 저기 눈길을 두며 쉬엄쉬엄 내려오는데 또 한 시간. 꼭 2시간만에 산을 한바퀴 빙 돈 셈이다.
그리고 마무리로 다시 들른 보림사. 860년경 신라 보조선사가 창건했다는데, 선종(禪宗)의 도입과 동시에 맨 먼저 정착된 곳이기도 하다. 가지산파(迦智山派)의 근본도량이었으며, 인도 가지산의 보림사, 중국 가지산의 보림사와 함께 3보림이라 일컬어지고 있는 곳이다. 경내에는 국보 제44호인 3층석탑 및 석등, 국보 제117호인 철조비로자나불좌상(鐵造毘盧舍那佛坐像), 보물 제157·158호인 보조선사 창성탑(彰聖塔) 및 창성탑비가 있고, 보물 제155호인 동부도(東浮屠), 보물 제156호인 서부도 등은 총탄의 아픔까지 간직하고 있다. 경기도에서 시작되는 우리나라 '부도기행'은 화순의 '쌍봉사'를 거쳐 여기 보림사에서 마무리된다던가….
가까이 있어 그냥 지나치고 그 진가를 몰랐던 가지산의 매력에 흠뻑 빠진 산행, 다른 여행보다는 산행을 덜 좋아하는 한결이가 "우리 언제 또 이 산에 와요."라는 말을 먼저 했다는 것만으로도 참 좋은, 편안한 산이라는 걸 말해 준다. 산뜻한 기분으로 세 식구가 손바닥을 소리나게 모은다. 행복한 웃음이 번진다.
길과 글을 사랑하는 한결가족 ks0005@lycos.co.kr
2004-02-07
